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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李荇) 1478(성종9)∼1534(중종29)
작성일 : 09-11-12 16:52    
조선시대 문학정승으로 남산 아래 예장동의 한 마을인 청학동에 서당을 짓고 여생을 여기서 마쳤다.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 청학도인(靑鶴道人), 어택어수(漁澤漁搜), 본관은 덕수(德水), 사간(司諫)의무(宜茂)의 아들이다. 연산군 1년(149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권지승문원부정자·검열·전적을 역임하고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 때 응교로서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 이어 함안에 이배되고, 이듬해 거제에 격리·안치되었다. 1506년(중종1)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교리에 등용, 이 해 사가독서했으며 이듬해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4(중종9) 사성이 되어 지제교를 겸임하고, 이듬해 대사간이 되어 신진사류인 박상·김정 등이 중종의 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상소하자 이를 반대했다. 1517년 대사헌에 올랐으나 왕의 신임을 받은 조광조 등 신진사류의 중용으로 첨지중추부사로 좌천, 이어 사직했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가 제거되자 부제학. 이어 대제학에 승진하고, 공조 참판 이조 판서를 거쳐 1527년 우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1529년「여지승람」수찬당상이 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찬진했다. 이듬해 좌의정에 올라 권신 김안로의 전회을 논박하다가 판중추부사로 전직, 이어 함종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후에 문현(文獻)으로 개시(改諡)하였으며 저서로 용재집이 있다.
<중구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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